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 년 남짓 되는 때였는데 회사가 속한 그룹에서 해운 운송회사를 설립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C 회장의 오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트럭 회사로 부터 시작하여 항공 회사를 거쳐 선박 운송도 하게 되면 명실 공히 종합 운송 그룹을 거느리게 되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 동안 동남아 출장을 다녀 온후 지점에서 발견된 문제점과 대책 마련에 한창 바쁠 때에
인사 담당 H상무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지점의 책임과 관련된 내용도 함께 검토 중이었는데 감사실이 아닌 인사 담당 상무님의 호출에 다소 의아해했다.
당시 지점에서 재고 관리의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이러한 문제점에 관련한 대책을 검토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무님의 첫 질문이 이외였다.
"자네 회사를 옮길 생각 없나?"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나에게 상무님은 자초지종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우리 그룹이 Sealand와 합작으로 Container 회사를 설립했고 지금 산업 은행으로 부터 계획 조선 자금을 받아
선박을 건조 중인데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취항 후에는 미국 지점 설립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장님은 이 일을 담당할 사람을 빨리 뽑으라는데 내가 적임자로 뽑혔다는 것이다.
회장님이 원하는 사람은 지점을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해외 지점 설립에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지점이 설립되고 안정 단계에 접어 들면 KAL로 다시 불러 들이겠다는 것이다.
Amsteram 지점에서 본사 발령을 받을 당시에도 같은 그룹에 속한 건설 회사로 옮길 기회가 있었지마는
비교적 짧은 project이고 project가 끝나면 어찌 될지 몰라 불분명한 미래 때문에 거절했었다.
취항하게 되면 미주 지역에 6-7개 정도의 지점도 설치하고 현지인도 채용하는 등 많은 관리 업무를 해야 하는데
그 많은 일을 담당할 Home staff는 내가 유일했다.
Amsterdam에서 얻은 경험으로 두려움이 없어진 나는 솔직히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었다.
Amsterdam애서 신혼을 보낸 아내는 미국 에서 살게 돤 사실만 알고 기뻐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회사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고
그보다도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니 거절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옳았는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회장님은 드디어 선박회사를 설립하여 육상, 항공, 해상의 종합 운송회사의 꿈을 이루게 되었고,
그 해말 나는 KAL을 사직하고 미국 Oakland에 파견되어 지점 설립과 취항 준비를 하게 된다.
Amsterdam에서 본사로 돌아 온후 2년 만에 또 개척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최초의 Container 선박인 "한진 인천"이 취항하고 KAL 미주 지역 본부장이던 C 상무가 취항과 동시
미주 지역 본부장으로 발령받아 둘이서 Oakland를 본부로 삼아 Long Beach, Seatle, Chicago, New York,
Houston과 Canada 지점을 설립하고 63명의 현지인 직원과 일을 하게 된다.
40% 지분을 가진 Sealand로부터 선진 경영 기법도 배우고 현지 직원을 고용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 점은
나의 이력에 큰 보탬이 되었다.

1977년에 설립되어 내가 젊음을 불 태웠던 회사는 2017년에 파산하여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수고한다고 선물을 주시곤 하던 C회장님도 가셨다.
다시 돌아갈줄 알았던 회사는 항상 꿈속에서만 존재하였다.
이곳에 남아서 이방인으로서 살아 가며 갈등도 많지만 이제는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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